임충신(마리노) 수사 일가상 수상
지난 2018년 7월 31일 일가재단은 임충신(마리노) 수사를
가난하 소외된 청소년들의 자립을 위해 평생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기술교육으로 헌신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제28회 일가상 사회공익부문의 수상자로 선정하였고,
2018년 9월 1일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수상 소감
수상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일가 상을 받는 저의 소감은 먼저 “기쁨과 감사”입니다. 제가 살레시오회 선교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인데 저를 인정해주시고, 상까지 받을 수 있게 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일가 재단에 감사드리고 또 제 삶의 모든 일을 이끄시고 이루어지게 하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2000년도에 몽골에서 우리 수도회가 운영하는 기술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술을 지원하는 일 때문에 가게 방문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학교에서는 방과후 교실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은 모여 공부를 하고 밤에 간단한 기도와 저녁 말씀으로 일과를 마감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부탁을 제게 했습니다. 몽골 아이들 이 저를 보고 신기하게 생각하니, 선생님 이 제게 한 말씀을 부탁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스물두 살에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한국에 온 선교사로서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기술학교를 세우고, 아프리카(수단과 기니)에도 기술학교를 세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여덟 살 꼬마가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선생님은 왜 그렇게 사십니까?” 저는 단순하게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제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꼬마가 다시 질문 했습니다. “주님의 뜻이라고 어떻게 아시죠?” 그 말에 대답하기 어려웠지만 제 경험을 쉽게 풀어 이야기했습니다. “왠지 모르지만, 어린 시절부터 내 안에 그런 마음이 생겼단다. 그런데 놀랍게도 적당한 시기에 나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연결해주셨단다. 주님께서는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세상 곳곳에 가서 봉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셨단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뜻이라고 믿는단다.” 이 말을 듣고 다행히 꼬마는 만족했습니다.
저는 1967년부터 1997년까지 서울에서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기술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는 일을 했습니다. 60년대에는 가난한 청소년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기술교육을 통해 미래의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행히 가르쳤던 많은 젊은이가 성공해서 크고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졸업생들은 성공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아프리카 수단과 케냐 등의 기술학교에 도움을 주 기 위해 갈 때 기계와 공구 등을 사는 데 큰 도움을 주는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뜻을 따르는 수도자로서 수 도회가 요청하는 곳은 어디든지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아프리카 기니와 수단에서 기술학교를 처음 시작할 때 기술 고문이 되어 2년간 참여했고, 중국에서도 기술학교를 시작할 때 참여하여 16년간 기술교육을 한 기술자입니다. 지금도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지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2015년부터 매년 수단의 엘오베이드에 가서 기술학교의 고장 난 기계들을 고 쳐주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CAD 등의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아직 소원이 하나 있다면, 북한에서 기술학교를 세워 청소년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 오면 지금 당장에라도 뛰어갈 것입니다. 이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상 소감
수상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일가 상을 받는 저의 소감은 먼저 “기쁨과 감사”입니다. 제가 살레시오회 선교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인데 저를 인정해주시고, 상까지 받을 수 있게 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일가 재단에 감사드리고 또 제 삶의 모든 일을 이끄시고 이루어지게 하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2000년도에 몽골에서 우리 수도회가 운영하는 기술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술을 지원하는 일 때문에 가게 방문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학교에서는 방과후 교실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은 모여 공부를 하고 밤에 간단한 기도와 저녁 말씀으로 일과를 마감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부탁을 제게 했습니다. 몽골 아이들 이 저를 보고 신기하게 생각하니, 선생님 이 제게 한 말씀을 부탁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스물두 살에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한국에 온 선교사로서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기술학교를 세우고, 아프리카(수단과 기니)에도 기술학교를 세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여덟 살 꼬마가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선생님은 왜 그렇게 사십니까?” 저는 단순하게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제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꼬마가 다시 질문 했습니다. “주님의 뜻이라고 어떻게 아시죠?” 그 말에 대답하기 어려웠지만 제 경험을 쉽게 풀어 이야기했습니다. “왠지 모르지만, 어린 시절부터 내 안에 그런 마음이 생겼단다. 그런데 놀랍게도 적당한 시기에 나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연결해주셨단다. 주님께서는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세상 곳곳에 가서 봉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셨단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뜻이라고 믿는단다.” 이 말을 듣고 다행히 꼬마는 만족했습니다.
저는 1967년부터 1997년까지 서울에서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기술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는 일을 했습니다. 60년대에는 가난한 청소년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기술교육을 통해 미래의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행히 가르쳤던 많은 젊은이가 성공해서 크고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졸업생들은 성공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아프리카 수단과 케냐 등의 기술학교에 도움을 주 기 위해 갈 때 기계와 공구 등을 사는 데 큰 도움을 주는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뜻을 따르는 수도자로서 수 도회가 요청하는 곳은 어디든지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아프리카 기니와 수단에서 기술학교를 처음 시작할 때 기술 고문이 되어 2년간 참여했고, 중국에서도 기술학교를 시작할 때 참여하여 16년간 기술교육을 한 기술자입니다. 지금도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지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2015년부터 매년 수단의 엘오베이드에 가서 기술학교의 고장 난 기계들을 고 쳐주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CAD 등의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아직 소원이 하나 있다면, 북한에서 기술학교를 세워 청소년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 오면 지금 당장에라도 뛰어갈 것입니다. 이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